2013년 1월 12일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남해 여행길에 올랐다.
남해 본섬은 이미 여러번 가본 곳이라 이번 남해 여행에서는 남해의 부속섬 중에서 유인도 3곳
노도, 조도, 호도를 포함한 코스를 잡아 길을 떠났다.
서울을 출발하여 전주-순천간고속도로를 타고...
가장 먼저 남해군청에 도착했다.
군청 앞 마당에 오래된 고목이 군청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남해군청 바로 옆에 위치한 '미담전통한정식'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남해의 맛집으로 소문난 '미담전통한정식' 식당입구부터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점심특선 1만원으로 행복한 점심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남해여행의 첫 여행지는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 선생의 마지막 유배지 '노도'
'노도'는 행정구역상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보리암 입구에서 상주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백련마을 포구에서 이 곳 어부들의 낚시배를 이용하여 다녀올 수 있다.
백련포구 바로 앞에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섬이 '노도'
백련포구를 떠나...
10여분도 되지 않아 '노도'에 도착했다.
요즘 남해의 모든 섬에 가면 물메기가 한참이다.
옛날 이 섬에서는 배의 노를 많이 생산하였다고 하여 노도(櫓島)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작고 조용한 섬이지만 '서포의 얼이 쉼쉬는 문학의 섬'이라는 표말처럼 이 섬은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곳이다. 서포선생이 1689년 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남해에 유배
노도에 위리안치되어 3년동안 '윤부인 행장', '서포만필', '사씨남정기' 등을 저술하였고
이 섬에서 5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곳이다.
1997년 남해문화원에서 서포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허와 주변을 정비하고 안내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노도 선착장 앞에 설치된 유허비부터 마을을 지나 서포의 초옥터까지 노도를 한바퀴 돌아 보았다.
선착장부터 이정표를 따라 1km쯤 섬을 S자로 걸어 올라가면 '서포 김만중' 선생의 초옥터가 나온다.
섬의 북쪽에 자리잡은 평민의 마을과 다르게 이 초옥터는 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섬의 남쪽은 절벽으로 마을을 형성할 수 없었고 동쪽과 북쪽에 평평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는데...
유배의 몸이라도 풍수지리를 따져 일조량이 많고 태풍을 피할 수 있었던 동쪽에 터를 잡은 것 같다.
배산임수, 전저후고, 장풍국지 등 풍수지리를 따져 섬안에서 가장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
초옥터 주변에는 몇백년된 동백나무가 자리잡고 있었다.
초옥터
초옥터에서 바라본 풍경
우물터
우물터에서 바라 본 초옥터
초옥터에서 선착장으로 돌아나오면서 보이는 노도마을
옛 노도분교 자리
분교 관사는 동네 할머님들의 쉼터로 쓰여지고 있었다.
추억만을 간직한 옛 집터
노도분교에서 바라본 선착장과 백련마을
노도 선착장 풍경
노도 동진호 선장님 055-862-6573, 010-3119-6573
1시간 남짓 '서포 김만중'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노도를 돌아보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 위해 배에 몸을 싣는다.
남해여행 두번째 여행지, 금산 보리암
금산을 도보로 오를 수도 있지만 일정이 바쁜 관계로 금산 8부능선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금산 보리암을 오르기로 했다.
왕복 버스비 2천원
금산 8부 능선에 위치한 금산 보리암 입구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681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보리암 입구에서 바라본 상주해수욕장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 보리암
남해 앞바다를 품고 있는 '보리암 여래상'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
보리암전 3층 석탑과 여래상
화엄봉에서 바라 본 보리암
금산 31경 화엄봉
남해 금산(681m) 정상
남해 금산 정상 표지석 옆 망대(우리나라 최남단 봉수대)
남해 금산을 내려와 가천마을 다랑이논 가기 전에 잠시 들려본 미국마을
남해하면 사람들은 독일마을만 알고 있는데... 미국마을도 있다는 사실...
지역특화발전특구법에 따라 자치단체에서 가장 차별화된 시책을 모색하던 중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게 미국마을을 추진하였다.
겨울에도 따뜻하고 전국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관광자원과 청정해역으로 이름난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일원에 약30억원을 투입하여 약 24,790㎡(약7,500평)규모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주택의 경우에는 모두 목재구조로 주택을
건설하여 한국에서 보기 힘든 특색 있는 주택을 건설하여 마치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용소 미국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2006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촬영장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이제는 누구나 찾는 남해의 관광명소가 된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명승 제15호)
가천마을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대대로 마을에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가(家)에
전해오는 자료로 미루어 볼 때 신라 신문왕 당시로 추정되어지고 있으며, 미륵전설과 육조문에 대한
전설이 고려시대 이전에 삶이 시작되었고, 400여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설흘산 봉수대(烽燧臺)는 이미 그 전에 이곳 가천마을에 집단적으로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라 불리어 왔으나
조선 중엽에 이르러 가천(加川)이라고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으로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바다를 향한
산비탈 급경사지에 곡선형태의 100여 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의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다.
미조항에 예약해 놓은 숙소(미조리조트 http://www.mijoresort.com)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생선회로 저녁식사를 하며 남해 첫날 여정을 마쳤다.
다음날 아침
숙소 앞 방파제를 걸어본다.
빨간등대 뒷편으로 오늘 우리가 탐방하게 될 조도, 그 뒤로 호도가 보인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도행 도선을 타기 위해 미조남항으로 갔다.
미조남항(미조항은 남항과 북항 두 곳이 있다) 중간에 위치한
조도호 타는 곳, 이 곳에서 조도와 호도를 운행하는 도선을 타는 곳이다.
지난 16년 동안 조도, 호도 주민들의 유일한 이동수단인 갈매기호의 선령이 도래해
2010년 주민들의 건의로 4억 5천만원을 드려 19ton급 유조선 조도호가 2012년 9월 20일
취항식을 갖었다. 기존 13명 정원의 갈매기호에 비해 조도호는 34명 정원으로 정원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조도호는 하루에 4번 운항한다. 요금은 인당 편도 2천원, 왕복 4천원이다.
우리는 조도와 호도를 연계하여 여행하는 관계로 인당 6천원을 지불했다.
우리는 오전 8시 10분 첫배에 몸을 싣고 먼저 조도로 향했다.
아름다운 미조항 바로 앞에 있는 섬, 섬의 모양이 새가 날고 있는 모양 같다 하여 이곳 사람들은
'새섬'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실제로 미조마을에서 보면 큰 섬 끝의 쪼삣한 부분이 부리이고,
가운데 불룩하니 솟아오른 섬 봉우리가 몸통, 작은 섬쪽은 꽁지처럼 보인다.
조도는 멀리서 보면 섬이 두 개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중 큰 섬에 마을있는 곳을 큰섬(大島), 작은 섬을
조도라 부른다. 사람이 사는 새섬, 호도와 근처의 작은 무인도를 모두 합쳐 '조도'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 2개의 섬이었던 큰 섬과 작은 섬이 제방으로 연결돼 인위적으로 한 섬이 됐다.
조도는 부리 앞에 새 모이처럼 동그랗게 떠 있어 쌀섬이란 뜻의 이름이 붙은 미도(米島)를 비롯하여,
죽암도 노루섬, 목과섬, 호도, 애도, 사도 등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있다.
작은섬에는 큰섬, 작은섬, 호도를 통틀어 제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괭이나
낚시대만 가지면 농사를 짓고 고기도 잡을 수 있어서 섬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조도에는 36세대 76명, 호도에는 15세대 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미조항을 떠난지 10여분만에 조도에 도착했다.
요즘 바닷가, 섬마을 마다 유행인 벽화가 이 곳에도 산뜻하게 그려져 있었다.
물메기의 고장답게 마을 곳곳에 줄에 걸려 있는 물메기를 볼 수 있었다.
문어 통발
건조중인 물메기
우리는 먼저 큰섬 산정상을 오르기로 했다.
큰섬 정상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바람의 섬, 통영 두미도
뒷편으로 욕지도가 있는데... 흐린 관계로 보이지가 않는다.
산 정상을 내려와 큰섬 마을을 돌아본다.
이 곳에서 보니 미조항이 매우 가깝다.
큰섬마을 선착장
이 섬에는 우리가 배에서 내렸던 조도(작은섬)선착장과 이 곳 두곳의 선착장이 있다.
흔적만 남아있는 조도분교터
남쪽지방답게 교목이 야자수
해안으로 내려가니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큰섬마을을 돌아보고 작은섬으로 돌아왔다.
작은섬(조도) 선착장 풍경, 가는 곳 마다 물메기와 벽화
선착장에서 본 작은섬(조도) 마을 풍경
이번에는 작은섬(조도) 뒷동산에 올라가 본다.
뒷동산에 오르니 앞뒤가 바다로 트인 작은섬(조도)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 방파제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었다.
본래 2개의 섬이었던 큰 섬과 작은 섬 사이 제방으로 연결된
섬의 중앙에는 마을회관, 어촌체험센터가 산뜻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조도에는 젊은 부부도 보이고 아이들도 많았다.
다른 섬지방 어촌마을에 비해 생활환경이 좋은 것 같다.
3시간여 조도 탐방을 마치고...
11시 10분 2항차 배를 타고 조도에서 호도로 넘어왔다.
2항차에는 배가 바로 떠나지 않고 1시간 남짓 호도 선착장에
머물렀다가 12시 20분 다시 조도를 거쳐 미조항으로 회항한다.
1시간 동안 호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조도에 비해 호도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 옛 호도분교터
섬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나라 교육열은 참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옛날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백발이 되고, 그 자리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다.
청산도의 구들장 논과 비슷한 구들장 밭이 섬여러곳에서 보였다.
힘들었던 섬지역 농경문화를 엿볼 수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일제시대 해군기지가 있었다는...
이 마을 어르신의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
더 이상 이 마을을 설명해줄 젊은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1시간여 짧은 호도 탐방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가던 중...
선착장에서 마을로 올라오시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번 설에 뭍의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물메기를 사서 말리 신다는...
힘든 고갯길을 오르시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쳤다.
호도선착장에서 조도호를 타고...
짧은 조도, 호도 탐방을 마치고 미조항으로 돌아왔다.
미조항에서 발길을 돌려 찾아간 곳은 남해 독일마을
1960년대 어려운 시기에 조국근대화와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거주 교포들의 정착생활 지원과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독일의 이국문화와 전통문화예술촌을
연계한 특색있는 관광지 개발을 위하여 지난 2001년부터 천연기념물 제150호가있는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일원 30,000여평의 부지에 남해군에서 30여억원을 들여 기반을 조성하여 70여동을 지을수
있는 택지를 분양하였다.
건축은 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하여 전통 독일식주택을 신축하고 있는데
지금은 29동 정도가 완공되어 독일 교포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독일에 가 있는 동안은
관광객을 위한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마을에서 발길을 돌려 찾아간 곳은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669-1 일대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된 창선도 왕후박나무 서식지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며 제주도와 울릉도 등 따뜻한 남쪽 섬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일본, 대만 및 중국 남쪽에도 분포하고 있다. 주로 해안을 따라 자라며 껍질과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나무가 웅장한 맛을 주고 아름다워서 정원수, 공원수 등에 이용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용으로도 심어지고 있다.
마을 앞 농경지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남해 창선면의 왕후박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8.6m로 가지는 밑에서 11개로 갈라져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500년 전
이 마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부부가 어느 날 큰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의 뱃속에 씨앗이 있었다.
이상해서 씨를 뜰에 뿌렸더니 지금의 왕후박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스럽게 여겨 매년 마을의 평안과 왕성한 고기잡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나무에 ‘이순신 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건 400년 전 정유재란(1597)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이 이 마을 앞바다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다.
당시 이순신은 군함 500척으로 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단항마을에 잠복했던 장군은 주변에 무성하게 숲을 이룬 대나무를 꺾어내
작은 배에 가득 싣고 불을 질렀다.
불이 붙자 대나무는 마디가 터지면서 마치 대포를 쏘는 듯한 큰 소리를 냈다.
이순신 함대의 동정을 엿보던 왜군은 끝없이 이어지는 포성에 주눅이 들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한다.
왜군이 모두 물러간 뒤, 장군은 여유있게 해안에 상륙하여 이 왕후박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쉬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다음 전략을 세웠다. 마을 사람들은 승전을 축하하고, 장군을 성원하는 마음으로
푸짐한 음식을 내와서 군인들을 성원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전공을 세우고 쉬어 간 나무라는 자부심으로 이 왕후박나무를
이전보다 더 살갑게 돌봤다. 용왕이 보내준 이 신령한 나무를 아예 ‘이순신 나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남해(도)와 창선도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 마지막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대상으로 선정된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며...
남해 본섬과 부속섬 노도, 조도, 호도, 창선도 1박 2일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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