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과 함께 떠나는 섬여행(10)
신비의 섬 ‘옹도’ 베일을 벗다
태안반도 등대섬 106년 만에 개방
필자는 섬시인으로 유명한 이생진 시인(85)과 함께 다시 섬여행을 나섰다. 이번에는 1박2일 일정으로 이생진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서산 앞바다 옹도와 고파도를 가보기로 했다. 이중 특히 옹도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어 신비의 섬으로 여겨지던 섬으로 지난 6월 3일 등대가 점등된 후 106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생진 시인 이외에도 가수 현승엽 씨, 다음의 섬전문카페 ‘섬으로’를 운영하는 이승희 씨, 섬 및 어촌사회를 연구하고 있는 전남발전연구원 김준 박사 등과도 함께 했다. 김준 박사는 <섬문화답사기>1,2권, <한국어촌사회학>, <대한민국갯벌문화사전>,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여행> 등 섬, 갯벌 및 어촌사회에 관한 책을 16권(공저 포함)이나 펴내기도 한 섬 전문가이다. 우리나라 섬 1천개 이상을 여행하고 섬에 관한 시집을 34권이나 낸 이생진 시인, 섬을 노래하는 가수 현승엽 씨, 섬전문카페 운영자 및 회원들과 함께 했으니 모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 섬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섬이 옹기처럼 생겨 ‘옹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섬은 태안반도 근소만에 위치한 신진도 안흥신항에서 12km 떨어져 있는 유인등대섬이다. 옹도 섬 면적은 약 5만 ㎡. 어민들 사이에서는 고래를 닮았다 하여 ‘고래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510번지가 행정상 섬의 주소이다.
옹도 등대는 1907년 1월 인천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옹도섬에 세워진 유인등대이다. 이후 서해안을 따라 평택, 대산항이 개항되면서 옹도등대가 선박의 안전항해 길잡이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옹도등대는 현재 충청도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인등대이다.
옹도는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섬인 신진도 안흥신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중간에 가의도를 지난다.
안흥신항 앞 연포식당에서 담백한 맛의 우럭젓국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선착장으로 나갔다. 이곳에서는 여러코스의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⑴안흥신항-마도-사자바위-가의도-독립문바위-안흥신항 코스, ⑵안흥신항-마도-사자바위-가의도-독립문바위-정족도-목개도-안흥신항 코스, ⑶안흥신항-마도-사자바위-가의도-독립문바위-옹도-정족도-목개도-안흥신항 코스, ⑷안흥신항-가의도-옹도-궁시도-난도-가의도-독립문바위-사자바위-안흥신항 코스, ⑸안흥신항-가의도-옹도 하선-독립문바위-사자바위-안흥신항 코스 등이 그것이다. 이중 필자 일행은 옹도 방문이 주목적이므로 사전에 예약해놓은 ⑸번 코스인 ‘옹도하선코스’를 탔다. ‘옹도하선코스’를 제외하면 다른 코스의 경우 섬에 내리지않고 유람선상에서 섬들을 구경하고 선장으로부터 섬 안내를 듣는 코스들인 것 같다.
오후 1시 옹도로 가는 배, 신진도안흥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이 유람선은 제법 큰 배다. 탑승정원 526명, 2층으로 되어 있다. 선장이 젊다. 40세라고 한다. 배가 옹도를 향해 파도를 가른다. 우측으로 큰 섬 하나가 보인다. 선장 이기동 씨에게 물어보니 가의도라고 한다. 이기동 선장의 설명에 의하면 가의도는 태안반도 120여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이다. 08:30, 13:30, 16:30 등 하루 세 번 가의도 행 여객선이 운항된다고 한다. 가의도 주민은 40가구, 60명 정도. 가의도는 은행나무, 몽돌해수욕장, 마늘 등이 유명하다고 설명해 준다.
이곳 갈매기들 역시 유람선을 끝까지 따라온다. 유람선이다 보니 여행객들이 새우깡 등 먹을 것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갈매기들과 놀다보면 시간이 금새 간다.
승선 후 30분 쯤 지났을까? 멀리 옹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옹기를 뉘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이기동 선장에 의하면, 이 배 정원은 526명이지만 옹도가는 유람선의 경우 옹도 섬의 크기와 혼잡 등을 고려, 실제로는 1일 1회 300명 정도 만 승선시키고 있다고 한다. 하루 한번만 운행하고 인원제한이 있기 때문에 단체관광의 경우 사전예약이 필요할 것 같다.
1시 45분 쯤 드디어 옹도 도착. 섬이 아담하다. 선착장은 독도 선착장과 흡사하다. 선착장 좌측 화장실도 유럽식 카페처럼 예쁘다. 섬 정상에는 하얀 등대가 보이고 선착장에서 등대까지 데크계단길이 이어져 있다. 등대가 위치한 섬 정상 높이는 80m.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동,북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어 주변경관이 수려하다.
선착장에서 10m 오르면 우측으로 전망대, 65m 위에는 옹기포토존이 보이고, 바로 동백숲길이 이어진다. 이곳 동백숲은 백년 쯤은 족히 되어 보이는 군락지로, 봄이면 동백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산등성이에는 천남성이, 찔레꽃, 산벗나무 등의 자생식물이 분포되어 있다.
섬 정상에 오르면 중앙광장에 우뚝 솟은 등대와 함께 옹기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 옹도등대는 국토해양부 선정, 우리나라 아름다운 등대 16경 중 하나로 1907년 1월 최초로 점등되었다. 높이 25.4m, 백원형 철근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등대 아래 하늘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서해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신진도, 가의도, 격렬비열도 등 주변의 섬들을 소개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이중 특히 격렬비열도에 관심이 쏠린다. 태안반도 앞 바다에 있는 우리국토의 최서단 격렬비열도. 박정대 시인, 손택수 시인, 장석남 시인, 정끝별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이 시로 격렬비열도를 노래하고 그리워한 섬이기 때문이다. 박정대 시인은 그의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같은 눈이 내리지>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이 불멸, 두 잎의 불멸, 세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또, 정끝별 시인은 여행산문집 <여운>에서 “격렬한 사랑과 격렬한 청춘의 메타포로 다가왔던 ‘격렬비열도’. 저에게 격렬비열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구나 한번은 아프게 가보았으되 떠나와서야 그리워하는, 관념의 그림이자 조어(造語)의 섬이었습니다. 불멸과 불면과 사랑과 입맞춤으로 꽃 피울 수 있는, 사랑의 적막과 멀미와 고독과 맞대면하고 섰을 때라야 갈 수 있는, 사랑의 은유와 사랑의 환상을 나란히 잇대놓았을 때라야 볼 수 있는 풍경들, 저 격렬비열도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저 격렬비열도에 갈 수 있는 한, 가보고 싶은 한 여전히 청춘일 겁니다”라고 썼다.
충남의 제일 서단 태안반도 관장곶 서쪽 약 55㎞ 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섬 격렬비열도는 유인도인 북격렬비열도와 무인도인 동격렬비열도, 그리고 서격렬비열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약 1.8㎞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태안군에 속해 있으며, 지형은 가파른 사면과 깎아세운 듯한 해식애로 되어 있고 평지는 거의 없다. 연안은 간석지가 넓게 분포되고 수심이 얕아 선박의 접안이 거의 불가능하다. 육지와의 정기적인 해상교통도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군사작전상 대단히 중요한 열도이며 황해의 어로작업에 있어서 각종 어선의 항로표지가 되기도 한다. 북격렬비도에는 높이 107m에 이르는 육각형의 흰 콘크리트 등대인 격렬비도 등대가 있다. 안흥신항에서 낚싯배 또는 태안수중낚시 리조트의 쾌속정 등을 이용, 개인적으로 갈 수 있으나 비용이 만만치않은 것 같다. 정끝별 시인의 경우 쾌속정을 타고 1시간 40여분 만에 격렬비열도에 갔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다른 분은 빠른 낚싯배로 4시간 30여분이 걸렸다고 쓰여져 있다. 당초에는 북격렬비열도에 등대원이 상주했으나 교통불편으로 1994년 무인등대로 전환했다고 한다. 시인들이 노래한 격력비열도 안내판을 한참 들여다 본 후 전시관으로 내려갔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의 유명 등대도 소개하고 있다.
약 1시간 옹도 여기저기를 둘러 본 후 귀항을 위해 다시 배에 올랐다. 유람선은 먼저 가의도 선착장 가까이까지 접근한다. 이기동 선장은 유창한 말씨로 가의도에 관해 설명한다. 가의도는 신진도 안흥신항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섬으로 해안선 길이는 약 10km 이다. 이 섬에서는 어느 유인도 보다도 새 소리가 요란하다고 한다. 인근 정족도 방면에서 떼지어 날아든 가마우지와 갈매기 울음소리, 봄철이면 가의도 뒷산(큰산 79m)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와 멧 비둘기의 우는 소리 등 때문이다. 마을 한 복판 언덕에는 수령이 5-6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다. 섬 북동쪽 백사장은 ‘서해의 하와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배는 가의도 주변을 돌면서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바위섬들을 보여준다. 해수욕장 부근 바다에는 ‘아기를 업은 코키리바위’로도 불리우는 ‘독립문바위’가 서 있다. 독도, 백령도, 승봉도 등에도 이름은 다르지만 이와 유사한 모양의 해벽은 많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육지에 붙어있는 해벽인데 비해 독립문 모양으로 구멍 뚫린 바위섬이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건 매우 특이하다. 바다 위에 솟아있다는 점에서 홍도의 남문바위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남문바위는 삼각형인데 비해 이곳 독립문바위는 코키리 모양으로 등이 둥글다. 독립문바위 옆에는 양쪽에 돛대를 세워놓은 듯한 모양의 돛대바위도 보이고, 그 뒤로 멀리 정족도도 눈에 들어온다. 정족도는 물개섬이라고 부르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물개가 다수 서식했다고 한다. 지금도 5-6월 경이면 물개의 어종을 볼 수 있으며, 현재는 잠수의 명수 가마우지의 집단서식처가 됐다고 한다.
배가 기수를 돌리자 사자바위도 보인다.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바다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멀리 중국 땅을 바라보며 우리 서해안을 지켜주고 있는 듯 하다.
사자바위 앞에는 점을 찍듯 작은 바위섬들이 이어져 있고 그 끝단에 거북이 모양의 바위섬도 눈에 들어온다. 섬 주민들이 장수를 기원하는 바위라고 한다.
서해안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관장수도 길목에는 코바위도 있다. 동화 속 피노키오처럼 뾰족한 코를 자랑하고 있다. 부부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코바위를 끝으로 유람선은 안흥신항으로 귀항한다. 약 3시간의 여정. 106년 만에 그 모습을 보여준 옹도 여행. 마치 독도를 다녀온 것 처럼 아련하다.
구도항 갯마을횟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고파도에 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린다. 안개 자욱한 아침바다. 바다는 아직 잠에 취해 있는 듯하다.
이생진 시인이 조금 일찍 나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 시인께서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아직도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뜬 눈으로 살자/저 섬에서 한 달만/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뜬 눈으로 살자"고 다짐, 또 다짐하고 계신 건 아닐까? (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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